"육군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지?"
"무슨 소리야, 해병대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지."
"야! 특전사 훈련 힘든 거 몰라?"
"해군 함정생활 안 해봤지? 먹을 물도 없어서, 샤워도 일주일에 한 번씩 해. 여름에 철판에 스치기만 해도 화상이야."
"야. 공군은 너네들보다 군생활 훨씬 길게 해."
군대 제대하고 여러 친구들이 모이게 되면, 다들 우리 부대가 힘들다고 마치 힘든 부대를 나왔다는 것이 자랑인양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결코 결론 나지 않았다. 왜냐면 자기가 나온 부대 이외에 다른 군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은 없었고, 자기 힘든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출장이 잦은 덕에 육아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은 나쁜 남편이다.
최근에 몇 개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덕분(?)에 집에서 육아를 함께 하는 날이 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늦게 잘 때까지 full time으로 육아를 함께해보며 깨달았다.
'육아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정말 훨씬 힘든 일이구나.'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아이가 자고 있으면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어요."
라고 했던 고객사 팀장의 우스갯소리가 농담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을 줄이야.
'이유식 만들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놀아주고, 책도 읽어주고, 재우고, 가끔씩 산책도 나가고, 병원도 가고, 외출도 해야 하는' 루틴으로 보내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나가는지 모른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기에 신경이 곤두서 있어야 하고, 체력은 거의 항상 방전 상태로 버텨나간다. 물론 그 사이사이,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하는. 아내의 그간의 일상이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졌고, 온전히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육아 전담자의 노력과 헌신을 정말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난 고작 서포트 역할도 이렇게 힘들어하니..
내가 최근처럼 육아를 적극적으로 해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육아의 헌신을 이해하는 척했거나, 이해하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고민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귀한 경험이었다.
물론 딸이 주는 기쁨과 행복은 감히 측정할 수 없이 크다.
조직을 컨설팅을 하면서도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게 된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조직 내의 거의 모든 부서, 모든 계층의 직원들과 인터뷰를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부서 간, 직급/직책 간의 갈등을 많이 보게 된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은, 현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쉽고 단순하다고 생각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일하는 사무직원들은 편하게 쉬면서 일한다 생각한다. 고객 접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고객 대응하지 않는 부서는 편하다고 생각하고 외근이 거의 없는 직원들은, 해외 출장 자주 다니는 직원을 부러워하며 해외 출장 다니는 직원들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내근직을 갈망한다. 리더들은 본인이 감당해야 할 일의 무게를, 감히 실무자들이 이해하겠냐 생각하기도 하고, 실무자는 이런 열악한 환경, 조건에서 일을 해보지 않았으니, 리더들은 현실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힘들고 상대 부서, 상대방의 일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물론 진심이 그런 건지, 아니면 본인의 힘든 상황을 부각하기 위해 그런 건진 모르지만, 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감히 어떤 일이 더 힘든지에 대한 무게를 재는 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행여나 어떤 일이 더 힘들다고, 정신 승리하고 우는 소리 하는 것이 올바른 문제 해결과 관계의 회복에 도움이 될까?'중요한 것은 내가 경험하지 않은, 행여나 경험을 해봤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 받아들이는 무게감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해선 안된다 생각한다.
어설프게 상대방을 이해를 하려고 하기보다, 잘 모르면 판단을 유보하는 게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인생 드라마 중 한 편이라고 생각하는, '미생'의 한 장면을 나누고 싶다.
장백기 曰
"사무실이 현장이라니 말장난이 지나치군요! 현장이 뭔 줄이나 아십니까?
사무실 끄적임 몇 번으로 쉽게 쉽게 잘려나가는 구조조정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현장 노동자라고 합니다. 그들의 전투화를 소개해드릴까요? 워커 신고 일 합니다.무거운 공구가 떨어지면 발등 아작 나니까. 전투화는 그런 겁니다."
장그래 曰
"당신이 생각하는 현장의 치열함은 기계가 바쁘게 돌아가고, 힘을 들여 제품을 만들고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지옥철을 겪으면서 출근하고, 제품 수익률을 위해 환율과 국제통상 가격을 매일 체크하고, 숫자 하나 때문에 수많은 절차를 통해 실수를 방지하고, 문장 하나 때문에 법적 해석을 검토하고 결과를 집행합니다.
서류만 넘기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밀고 당기는 많은 대화가 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죠. OK 전화 한 통을 받기 위해, 해당국 업무 시간까지 밤을 새워 대기하기까지 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현장에서 생산하는 모든 제품은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과정을 거친 이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물건들은 사무실을 거치지 않고선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 중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제품은 없죠. 제품이 실패하거나 부진을 겪는다는 건, 그만큼의 예측 결정에 실패했거나 기획 판단이 실패했다는 걸 겁니다. 실패한 제품은, 그 실패를 바탕으로 더 좋은 제품을 기획해내겠죠.
공장과 사무는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공장과 사무에서 실수와 실패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큰 그림으로 본다면, 우린 모두 이로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현장은, 당신이 생각하는 현장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오해를 하고 살아간다. 세상을 나를 기준으로 바라보게 되면, 상대방들이 기준을 벗어난 불량으로 보이고 상대방을 기준으로 바라보게 되면, 내가 기준을 벗어난 불량이 될 수도 있다.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고, 오해가 이해가 되기 위해선 어디에 기준을 두고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