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으로 부터
"대표님. 이번에 우리 OO프로젝트 목표 달성했습니다. 다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무엇을 해낸 것보다 더 기쁠 때가 많다.
사실 고객사가 낸 성과에 내가 직접적인 역할을 하진 않는다. 내가 경기에 뛰어서 골을 넣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이 잘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가 골을 넣은 것 이상으로,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짜릿한 느낌을 받는다.
고객들과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면서, 100m 달리기와 같은 단기적인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론 42.195km의 마라톤을 완주하고, 그 속에서 유의미한 성취를 함께 경험해나가는 것을 좀 더 가치있게 생각한다.
햇수로 9년 동안 함께 해오고 있는 고객사가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땐, 규모도 크지 않고 운영의 상태도 굉장히 열악했던 조직이었다. 더군다나 자발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해당 조직의 고객사가 나서서 상대적으로 품질문제가 많고, 생산성이 열악한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추진한 프로젝트였다.
'연애'나 '선'보는 과정도 없이, 강제적으로 시작된 인연이었다.
첨으로 현장을 방문해서 둘러본 모습은 처참했다.
'아니 이곳을 어떻게 정리하지?' 란 생각이 들 정도로, 기본적인 정리 정돈이 이뤄지지 않았던 곳이었다. 더군다나 현장의 작업자들 대부분은 외국인들이라, 내부 구성원들 간에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환경이기도 했다. 직원들의 퇴사와 이직도 잦아서 사장님께서 고민을 많이 하시고 계셨는데 그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상황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장님께 호기롭게 전했던 말은
"사장님. 직원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퇴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이 회사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초반에는 정말 치열하게 함께 조직의 변화와 개선을 위해 노력했었던거 같다. 몇 번이나 직원들과 회사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 회사에선, 내가 직접 나서서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로 하여금 직접 실행하도록 했다. 시간이 조금은 오래걸릴지언정, 스스로 그 일을 완료하게 하고, 나는 검토와 피드백을 해주고, 다시 보완하게 하는 그러한 과정을 반복했다.
처음 1~2년 정도까지는, 눈에 띌 만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1~2년 만에 사람이 바뀌고, 현장이 바꼈으면 진작에 다 했겠죠. 저는 우리직원들이 스스로 개선해내는데 까지 최소한 5년은 공부하고 노력해야지 조금 효과 나올거라 봅니다."
사장님께선 성과에 대해 재촉하지 않으시고, 묵묵하게 기다리시며 지원을 해주셨다. 참 흔치않았던 경영자였다. 다행스럽게 3~4년이 지나면서 하나 둘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스스로 계획을 하고, 실행을 하면서, 문제점들을 개선해나갔다.
현장은 정돈이 되어가고, 직원들은 생각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 보여졌다. '남다르게 좋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고객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었다.
해당 조직의 고객사에는 70여개의 크고 작은 협력사들이 있었는데, 처음 만났던 당시, 해당 조직의 수준은 최하위권이었다. 고객사는 매년 제품의 품질과 원가, 납입능력 등을 종합해서 평가를 했는데, 최하위권이던 조직이 50위 -> 20위권 -> 10위권으로 엄청난 성장을 하다, 함께 한지 6년차에 협력사 중 종합 1위를 달성했다.
상상도 못할 성과였다. 중요한 건 성과를 내는 과정에 있어, 내가 전적으로 개입해서 지원을 한 것이 아닌, 스스로 노력해서 이뤄낸 성과라, 그 결과는 더욱 더 빛났다.
그러던 중에, 해당 조직 고객사의 중역이 해외주재원 생활 후 귀국해서, 몇 년 만에 해당 조직을 방문을 했다. 처음에는 해당 조직이 1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을 수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아니~ 사장님도 그대로고, 직원들도 그대로고, 외부에서 누가 영입되서 변화와 혁신을 추진한 것도 아닌데, 그 꼴찌 회사가 어떻게 그런 성과를 낸거지? 도대체 그 회사에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의심반 기대반으로 해당 조직에 방문을 했고, 본인이 5년전에 봤던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참고로, 일부 고객사에는 어디가서 컨설팅 받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주변에 알리지 말라고 한다. 온전한 당신들의 성과인데, 괜히 컨설팅 받아서 잘 했다고 착각할 수 있으니깐 누가 물어보면 컨설팅 받는다고 하지 말라고 강조를 하는데, 해당 조직도 그런 회사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내가 해당 조직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으면서 컨설팅을 함께 해오고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변화의 계기를 물어보기 위해 나에게 연락을 했다.
"도대체 비법이 뭡니까?"
"제가 한 건 그냥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무엇보다도 스스로 계획한 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묵묵하게 봐줬을 뿐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보니깐 이런 성과나 났을 때 제가 함께 하고 있었을 뿐이지, 제가 한 건 없습니다."
이건 내가 겸손하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다. 내가 대단히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대단한 설득력이 있어서 그들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해당 업에 대한 전문지식이야, 담당자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을것이고, 나는 그리 달변가가 아니라 재밌게 이끌어가지도 못한다.
컨설턴트로서 10년 가까이 해오다보니 어떠한 조직이든, 탁월한 성과를 내고자 하는 공유 목표들이 있고 잘 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경영자가 운영의 과정에서 조직을 잘 조율하지 못하고, 구성원들에게 성과를 닦달해버리면, 잘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탁월한 성과를 내는 조직들은, '낙담의 골짜기'를 벗어날 때 까지, 포기하지 않고 묵묵하게 걸어간 곳이었다. 단기적인 노력으로, 지속적인 성과를 내는 조직은 아직까지 본 적 없다.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내가 컨설턴트 일을 시작하기 전에, 되고자 했던 컨설턴트의 상이 있다.
사실 직장생활을 할 때, 직접적으로 컨설팅을 받아본 경험은 없었다. 조직 내에서 이런 저런 컨설팅이 이뤄지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고, 주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컨설턴트를 어렵고,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고, '외부에서 와서, 새로운 일을 만들어 시키는 귀찮은 존재'라 여기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다가가기 어려운 컨설턴트는 되지 말자고 생각했다. 조직과 구성원들을 도와주기 위해 갔는데, 오히려 부담이 되는 대상이 된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고객들과 편하게 소통하고, 인간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그런 컨설턴트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풀어놓기 보다, 그들이 궁금해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것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철학을 오랫동안 펼쳐나간 곳이었다.
오늘 해당 조직에 1달여만에 방문했는데,마침 오늘 고객사로부터 내년도 수주를 엄청 받았다고, 큰일났다고 하는 행복한 고민을 들으니, 지난 9년의 시간이 스쳐지나갔다. 참고로 처음 방문했던 9년 전 대비, 매출이 4배 정도 성장을 했고, 운영역량도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생산성과 품질향상, 원가혁신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하루하루는 전쟁터와 같다. 평화롭게 아무일 없이 보낼 수 있는 날은 거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여정처럼, 닦달하지 않고, 구성원들의 능력을 믿고 뚜벅뚜벅 가다보면 지금보다 더 높이 올라가 있을것을 확신한다.
천천히, 오랫동안 함께 걸어가면서 고객의 성취를 함께 경험 할 수 있다는 건 너무나도 큰 축복이다.
'내가 아닌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 곧 내가 잘 되는 것.'
이 업을 하면서 배운 교훈이다.